중단된다는 시점에, 6.25는 과연 끝났는가? 3만명이 넘는 미군을 포함, 100만명 이상의 사망자를 낸 6.35전쟁. 백두산까지 진격했던 UN군에 맞서기 위해, 모택동은 100만 넘는 중공군을 한국전쟁에 파병했다.
그 시절 가난한 중국은 무기도 없어서 5명당 소총 1자루였다는 얘기는 전설이 아니라 현실이다. 휴전협정이 진행되는 가운데 계속된 치열한 전투는 피의 능선, 백마고지의 전설 등으로 전해내려 오고 있다.
7월이다. 7월이면 휴전협정이 생각나는 것은, 거의 모든 기성세대의 공통점. 그러면 6.25는 끝났는가? 트럼프와 김정은이 종전선언을 논하고, 그간 계속되었던 군사훈련들이 휴전회담 반대데모..1953년 그 무더운 7월에 많은 중고등학생과 일반 시민들이 동원되었다. 중학교 2학년이던 필자는 방송요원으로, 트럭을 타고 마이크를 들고, 휴전반대를 선동하고 있었다. 그러나 ‘휴전반대’를 밀어붙이던 이승만전대통령과 상관 없이 휴전은 이루어졌고, 현재 남북과 미국이 협의중인 종전(終戰)선언은 그 뒷풀이에 해당된다.
DMZ는 무엇인가? 대한민국과 어떤 관계가 있나? 이렇게 물으면, 그걸 국민이 다 아는데
질문이라고 하고 있느냐, 바보 아냐? 소리가 나오리라는 것을 필자가 모르지 않는다. 그렇다면 DMZ(비무장지대) 라는 영문자를 자세히 들여다 보자.
DMZ는 비무장지대라는 영어문장 Demilitarized Zone의 약자(略字)다. 과연 그럴까? 과연 우리는 DMZ의 의미를 그냥 ‘비무장지대’라고 믿어버리면 마음 편한가? 필자는 DMZ를 ‘Diplomacy Military Zero’라고 본다.
즉 이 나라의 ‘외교력 군사력 빵점’이 DMZ라는 것이 필자의 주장이다. 필자는 뜻 있는 몇 분들과의 ‘DMZ 엑스포’ 발기 과정에서 DMZ는 ‘Diplomacy Military Zero’ 라고 여러차레 언급했다.
사실 아닌가? 전쟁은 이 땅에서 일어났다. 휴전도 전쟁이 발발한 이 땅에서 이루어졌다. 그런데 기가 막힌 것은 휴전협정 당사국에 대한민국은 빠져 있다.
UN을 대표한 미국과 북한과 중국의 서명만으로 이루어진 휴전협정. 대한민국은 어디 있는가? 이 나라에 서 일어난 전쟁인데, 수 많은 이 나라 국민의 목숨을 빼앗아간 전쟁인데, 그 전쟁의 휴전협정 문서에 대한민국은 왜 빠져야 했는가?
그래서 DMZ는 ‘Diplomacy Military Zero’ 라는 필자의 의견이 논리적 근거를 발견하는 것이다. “외교력, 군사력이 모두 빵점이어서 생겨난 지역이 비무장지대다”라는 의견이 ‘역사뒤집기’에 해당 될는지는 몰라도, 휴전협정 당시의 대한민국의 실력(?)을 평가하는 주장으로는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차피 국가는 강해야 한다. 약하면, 그래서 전쟁에 지면, 남자는 죽어야 하고 여자는 승전국 남자들의 노리개가 된다. 우리나라 역사가 여러 차례나 증명하고도 남은 사실 아닌가? 그래서 DMZ를 ‘Diplomacy Military Zero’라고 해석하는 필자의 견해는 거부할 수도 무시할 수도 없는 진리를 포함한다. 역사를 향해 쑥덕질 하는 기분으로 다시 한 번 DMZ는 ‘Diplomacy Military Zero’를 외쳐 본다.
** 1953년 7월 27일, 6.25 한국전쟁 휴전협정문(정전협정문)에는 클라크 유엔군사령관, 북한 김일성, 팽덕회 중공군 사령관의 서명만 있고, 당시 전쟁 당사국 대한민국은 조인하지 않았다. 대한민국 육군소장 최덕신은 휴전협정문이 조인될 당시 대표로 배석만 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