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도건 칼럼]: ‘변명’이라 쓰고 ‘거짓’이라 읽는 사회

임도건 교수기고 | 입력 : 2018/07/31 [00:14]

 

▲ © 네트워크신문편집국

 

한 사람이 이상행동을 하면 정신병자라 하지만 여러 사람이 집단망상에 빠지면 이단종교라 한다. 소수의 예외적 일탈은 범죄로 처벌하는 대신, 다수의 보편적 무지를 관행으로 치부하는 이유는 뭘까?

 

거짓()은 범죄일까? 경우에 따라 정상참작이 가능한 관행일까?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는 말은 정치인 아닌 일반민에게도 해당할까? 일반시민은 세금납부 날짜만 어겨도 과태료를 물거나 재산압류를 당하는데, 공약을 지키지 않은 정치인은 고소·고발 전까지 민·형사상의 책임을 묻지 않는다. 기소내용은 하나인데, 피고와 원고의 진술은 물론 변호사와 검사의 주장도 다르다. 판사가 최종선고를 내리지만, 모든 판결이 공평하거나 정의로운 것은 아니다. 일정 부분 억울함이나 재해석의 여지는 남게 마련이다.

 

드루킹 특검 와중에 노회찬(정의당)의원이 운명했다. ‘공소권 없음으로 처리되었지만 여진이 남아있고, 8월 중순에는 안희정에 대한 선고가 내려진다. 경기도지사의 조폭연루 논란은 진행 중. 기무사령관과 전·현직 국방장관의 말도 엇갈린다.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려운 장성들이 별들의 전쟁(Star Wars)을 벌이는 것.

 

 

 


 

팩트는 하나인데 진실공방에 따른 임팩트는 엇갈린다. 어느 한 쪽이 거짓말을 하는 것인데, 그렇다면 진실규명의 잣대는 무엇일까? 한국인들이 거짓말에 능숙하고 또한 그런 문화에 익숙하다는 사실은, 그만큼 속는 사람이 많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남들은 다 아는데 나만 모르는 엄청난 거짓말이 존재한다는 의심이 들 때가 있다. 대형사건이 터질 때마다 정치공작이나 음모론이 기승을 부리는 이유다. 죽일 하나를 찾아내 희생양을 만들어야 직성이 풀리는 한국인의 집단 분노 정서때문이다. 흔히 진실의 판단잣대로 감각을 꼽지만 그런 에도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심리적 함정이 있다.

 

거짓말 고수는 거짓과 진실을 섞어 말한다. 필요한 부분만 편향적으로 본다는 무주의 맹시”(inattentional blindness). 한 가지에 집착하면서 나머지를 보지 못하는 것이다. 사실은 눈도 혀 이상으로 많은 말을 한다. 타짜는 가짜 감정으로 연막을 치기 때문에 전문가 아니면 분간이 어렵다. 거짓말은 인지부하(cognitive load)를 동반한다. 처리능력보다 입력된 정보량이 많아 정상적 인지가 불가능해 지는 것이다.

 

남을 속일 때, 남성의 말이 여성보다 3배 더 많다. 여성의 거짓말이 짧은 이유는 꼬리가 길면 표정이나 목소리에서 꼬투리 잡힌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기 때문이다. 남성은 사실 속에 거짓을 은폐하는 반면, 여성은 정보 자체를 차단하여 의심의 여지를 차단한다. “눈 하나 깜짝 않고” “입에 침이나 바르고는 말에서 보듯이 거짓말 할 때 혈액이 얼굴에 집중하기 때문에 입술의 건조함을 보충하기 위해 침을 바르는 것이다.

 

리플리 증후군(Ripley Syndrome)이라는 게 있다. 주변현실을 부정하면서 허구의 세계를 진실이라 믿으며 체화된 거짓말과 행동을 반복하는 증상이다. 고위 권력을 누렸을수록 그럴 가능성이 높다. 다른 경우도 있다. 분명 2년 전보다 체중이 늘었는데 친구로부터 거짓 위로를 듣고 싶어 되묻는 질문이 나 살쪘지’(?). 이럴 때 어떻게 말하는 게 진짜 친구일까?

 

직장 내 루머도 힘 들긴 마찬가지. 터무니없는 거짓말이 직장이나 온라인에서 떠돌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가해자에 대한 증거수집보다 냉정을 찾고 빨리 상황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혼자 여파를 감당하다간 패닉상태를 맞는다. 거짓말에 속는 것은 그 사람이 멍청해서가 아니라 너무 진지하고 잘 믿어주기 때문이다. 잘 속는 사람은 그게 욕심이든 상대의 정교한 속임수든, 상대가 나를 믿어주기를 바라는 만큼 상대방을 과신하기 때문이다.

 

중복 더위에 두 죽음이 교차했다. 국민 70%를 종북·좌파로 몰고 대법원 탄핵판결을 원천 부정했던 아나운서 정미홍(61)의 타계와 국회의원 특··비 반납을 주장한 노회찬(63)의 별세가 대비되는 이유다. 일각에서 자살을 미화하는 비정상이라고 비꼬았지만 그것은 특정인에 대한 미화라기보다 사회적 약자를 위해 헌신한 삶을 기리는 73,000여 시민들의 자발적 애도였다. 정치일선에서 물러나 일반인 신분으로 자기성찰을 가져야 할 시간에 노이즈 마케팅으로 긁어 부스럼을 내니 여당 내부에서조차 원성을 터뜨렸다. 정치적 견해가 달라도 망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는 게 인간의 도리 아닌가?

 

 

▲   © 네트워크신문편집국

 

 

죽음은 일생의 결정체다. 살아온 궤적에 따라 역사적 평가도 달라진다. 명함보다 비석이 중요한 이유다. 한 죽음은 한 줄 보도로 잊혀 진 반면, 다른 죽음은 정치발전의 마중물로 기억될 것이다. 창조주의 눈에는 모두 구원받아야 할 죄인이지만 햇볕은 죄인이나 의인에게 똑같이 내리쬔다. Memento mori. 거짓말을 줄이기보다 거짓에 대해 무감각해진 모럴 해저드에 대한 신의 경고다. 속였다가 들키는 사람의 회복보다, 속은 사람의 회복이 훨씬 더 어렵다는 점을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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