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트워커 ‘그리움’은 가슴속에 머물고 있는 값진 자산이다.

윤명선 박사의 네트워커 행복의 향연

김현정기자 | 입력 : 2018/09/14 [11:21]

 

 

▲     © 네트워크신문편집국

 


 

21(916-22)

 

그리움은 가슴속에 머물고 있는 값진 자산이다.

 

그리움은 보이지 않지만 인생의 가장 값진 자산이다. 수평선을 바라보면서 그것이 그리움으로 떠 있다는 상상을 하면서 섬으로 여행을 다닌다. 수평선은 무지개처럼 바다 위에 떠 있지만, 그 실체는 그리움으로 가슴속에 머물고 있다. 그리움은 길이 되어 어디로든 사람들을 인도한다. 그 속성은 자유를 누리며 세상을, 아니 우주를 여행한다. 그래서 그리움은 무엇인가를 발견하고 창조하는 원동력이 된다. 그러므로 그리움을 항상 간직하며 사는 삶이 풍성하고 행복한 인생이다.

 

 

916():

 

그리움은 인생의 값진 자산이다.

 

그리움은 보이지 않지만 인생에 있어서 가장 값진 자산이다. 행복은 그리워하는 순간에 있으며, 행복은 그리워하는 마음에 있다. 그리움 때문에 미래에 대한 희망을 떠올리고, 무엇인가 기대감을 가지게 된다. 가슴속에서 그리움이 뛰놀지 않고 있다면 그 인생은 얼마나 황막할 것인가? 그리움은 인생의 의미를 추구하는 과정으로 삶의 원동력이 되, 소망을 키우면서 보다 질 높은 행복을 제공해준다. 한 국어사전에서는 그리움이란 보고 싶어 하는 마음이라고 협소하게 정의하고 있지만, 광의로는 장래에 대한 소망과 기대감을 포괄한다. 그리움의 대상은 따로 없다. 구체적인 모습은 스스로 형상화시키는 것이다. 하고 싶은 일, 보고 싶은 사람, 미지의 세계, 만들고 싶은 세상: 이 모든 것들의 동력은 그리움이다. 유토피아도 그리움으로 우리들 가슴속에 항상 떠 있는 것이다. 그리움으로 가는 길은 언제든지 내 마음속에서 형상화될 수 있다. 자신이 그리움을 키우는 만큼 행복도 자란다. 비록 그리움 때문에 마음이 아플 때도 있지만, 그것이 자라면 희망이 되고, 사랑으로 피어난. 그리움의 집을 짓고 그 속에서 행복의 꽃을 피우며 살자. 적어도 그리움은 인생에 활력을 불어넣어줄 수 있으니 항상 간직하고 사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리움은 미래를 형상화할 수 있으므로 무지개처럼 희망으로 떠 있다. 그리움은 창작의 동력을 불어넣고, 창의성을 이끌어낸다. 그리움으로 그대에게 다가가 구원을 얻고 싶다. 그때 행복의 꽃은 내 마음의 정원에서 가득 피어오를 것이다.

 

 

917():

 

그리움은 수평선으로 바다에 떠 있다.

 

 

·여름·가을·겨울 없이 섬 여행을 다닌다. 언제부턴가 바다에 떠 있는 섬이 아니라 내 마음속 섬을 만나기 위해 섬으로 여행을 떠난다. 섬 여행을 떠난다는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설렌다. 배가 육지를 떠나 바다로 들어서면 저 멀리 섬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수평선은 섬들을 피해 저 멀리 아득하게 바다에 누워 있다. 누구나 수평선을 보면 그곳으로 가보고 싶어 하지만, 아무리 달려가도 수평선은 결코 다가오지 않는다. 달려가다 보면 결국 육지가 나타날 뿐. 섬 여행을 하면서 수없이 수평선을 바라보았지만, 그것이 어디에 있고, 그 실체가 무엇인지 한동안은 발견하지 못하였다. 수없이 섬 여행을 하면서 상당한 세월이 흐른 후에야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수평선은 우리들의 마음속에 머물러 있는 것이며, 그 실체는 그리움이란 것을. 그 너머에 있는 사랑, 소망, 천국...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 그것이 그리움이다. 그리움 속을 헤매다보면 어느덧 섬에 도착한다. 내 마음속 섬이 바다 속 섬을 만나면 내 마음은 해후의 기쁨을 느낀다. 바닷가를 거닐면 하늘이 희망으로 내려오고, 파도소리는 가슴속 스트레스를 시원하게 쓸어낸다. 그 길 위에서 일상에서 쌓여온 마음의 상처를 치유 받는다. 내일을 위한 새로운 설계를 하고, 삶의 동력을 회복하고 돌아온다. 바닷가에서 고독을 밟으며 거니는 동안 그리움은 자라고, 행복이 가슴속으로 스며든다.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는 곳: 이 순간 이곳이 바로 천국이 아니겠는가?

 

 

918():

 

기다림은 그리움의 표상이다.

 

인생이란 어쩌면 기다림의 연속일지도 모른다. 예술의 전당을 지나가다가 우연찮게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관람하게 되었다. 베케트의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는 인간의 근원적 문제를 다루고 있다. 무대는 단순하고 썰렁한 분위기다. 에스트라 공과 블라디미르 두 주인공은 무대 위에서 고도를 기다리고 있지만, 그는 결국 나타나지 않고 연극은 끝난다. “그만 가자. 가면 안 되지. ? 고도를 기다려야지. 참 그렇지.” 두 주인공이 주고받는 이 마지막 대사가 이 작품의 주제임을 말해주고 있다. 고도가 누구이고 왜 고도를 기다리는가에 대하여는 침묵하고 있다. 그냥 기다림만을 묘사하고 있을 뿐이다. 고도를 신이라고 하는가 하면, 꿈이라고도 하는 등 해석이 분분하다. 그 답은 오로지 관객 개인의 몫이다. 분명한 것은 사람들이 주인공들처럼 고도를 기다리며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 누구나 고도를 기다리고 있다. 그가 누구이며 어떤 자세로 기다리고 있는가가 다를 뿐... 그것은 내일이고, 소망이며, 그리움으로 인생의 나침반이 되고 등대가 될 수 있다. 현재의 순간에서 인생을 즐기고, 행복을 기다리지 말라는 권고가 스며있다. 그러나 현재에서 행복을 즐기는 것과 동시에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지는 것은 이율배반적인 것이 아니다. 마음속에 고도가 들어올 때 사람들은 희망을 가지고 위안을 받으면서 행복의 길을 걸어갈 수 있다. 인생은 이처럼 기다림의 연속이다. 자신만의 고도를 그리워하는. 항상 기다리는 마음으로 살아가면 행복이라는 선물을 받게 될 것이다.

 

 

919():

 

그리움은 우리들 가슴속에 있다.

 

지금도 추억이 머물고 있는 그곳이 그립다.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더 마음속에서 살아나지만, 너무 멀고 만날 기약이 없어서 쉽사리 갈 수 없는 그곳이 그립다. 눈 감으면 불현듯 나타나고 눈 뜨면 곁에 있는 듯 그리움이 유혹하는 곳: 해후의 기쁨과 함께 이별의 아픔을 감수해야 하는 그곳으로 달려가고 싶다. 대지에도 바다에도 창공에도 어디에나 그리움이 만든 길이 있지만, 실제로 그곳이 머무는 곳은 가슴속이다. 그리움이 찾아가는 것은 결국 한 사람이다. 괴테는 자신이 절반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자신을 완전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 한 사람의 여성을 추구하게 된다.”고 했다. 그리움은 마음을 움직여 그곳으로 달려가게 만든다. 사랑은 절반을 찾아 자신을 완성하기 위한 신성하고 위대한 작업이다. 그리움은 불완전한 인간이 완전함 또는 하나를 그리는 마음이다. 그리움은 구원의 손길이다. 그래서 그리움이야말로 인간의 마음을 아름답게 만들 수 있는 비밀병기이다. 그리움은 우리들 마음을 움직이고, 길이 되어 그곳으로 인도한다. 내가 지금 가고 싶은 곳은 그대의 마음이다. 빗방울 소리에도 그리움은 깨어나고, 바람소리만 나도 그리움은 밀려온다. 오늘 내 마음은 이곳을 훌쩍 떠나 그대에게로 다가간다. 그리움은 영혼 속에 남아 있는 법. 그리움의 길이 나를 유혹하고 있다. 지금 몸은 비록 멀리 떨어져 있지만, 마음은 이미 그곳 하늘 아래서 맴돌고 있다. 그 길이 바로 행복으로 가는 길이다.

 

 

920():

 

영원한 고향은 어머니이다.

 

인간은 누구나 고향을 그리워한다. 고향을 떠나 멀리 살고 있으면 때로는 고향을 그리며 마음을 세척하기도 한다. 분단의 장벽 때문에 마음대로 갈 수 없는 실향민들이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은 더욱 간절할 것이다. 출생해서 성장한 그곳이 그립다. 자연과 함께 뛰놀고, 친구들과 어울리며, 꿈을 키우고 자란 곳이다. 그곳에서 쌓아놓은 추억이 항상 머릿속에서 맴돌고 있다. 그래서 어느 해 오랜만에 고향을 찾아갔다. 차에서 내려 고향 마을로 얼굴을 돌리니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원래 작은 산으로 둘러싸여 자궁처럼 생긴 아담한 마을이 큰 길에서 오리쯤 떨어져 앉아 있었다. 그런데 마을 입구부터 고층 아파트들이 평풍을 쳐놓은 듯 마을을 가리고 있다. 걸어서 들어가는데 옛길을 찾을 수 없다. 새로 큰 길들이 동서남북으로 뚫려 있다. 길을 잘못 들어서서 돌고 돌아 마을에 들어섰다. 마을이 개발로 인해 누더기처럼 어지럽다. 온통 천지개벽이 되었는데, 옛 마을만 옛 모습 그대로 누워 있다. 아름답던 자연은 파괴되고, 옛 사람들은 떠나고 없고, 옛 추억만 내 머릿속에 서 맴돌고 있다. 고향의 옛 모습이 사라지고 없으니 고향을 잃어버린 기분이다. 이제 옛 고향은 추억 속에서나 만날 수 있게 되었으니 고향은 더욱 그리움으로 남아 있다. 문득 어머니 생각이 난다. 나를 낳으시고 길러주신 어머니! 고향에 오기 전에 머문 곳, 원 고향이 어머니 아닌가? 영원한 고향, 어머니! 어머니 품이 그립다. 이러한 그리움을 타고 행복은 다가오고 있다.

 

 

921():

 

그리움을 향한 독백이 행복을 선물한다.

 

그리움은 상상의 날개를 펴고 세상을, 아니 우주를 여행하고 있다. 아무 곳도 막힘이 없으니 자유다. 그리움이 지나가면 길이 된다. 그곳은 무한대의 공간이요, 막힘없는 시간이다. 그리움은 사랑을 기리고, 미래를 열며, 희망을 선물한다. 그리움이 있기에 가슴은 뛰고, 희망이 생기며, 내일이 기다려진다. 그리움 속에서 구원을 받을 수 있다면 행복은 완성될 것이다. 그래서 그리움을 형상화해 본다. 시가 아니어도 좋다. 독백이어도 괜찮다. 어떤 시인은 법언 같다고 했다. 중요한 것은 그리움이 있기에 이런 시가 탄생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움을 키워 가면서 지속적인 행복으로 가는 인생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리움은 행복을 실어다주는 마차이므로 이것을 타고 인생길을 계속 달려갑시다.

 

그리움이란 내일을 기다리는 마음/ 사랑을 그리는 마음/ 그대를 향한 마음입니다// 그리움 때문에 오늘이 즐겁고/ 가슴이 뜨거워지고/ 그대가 그립습니다// 미래가 있기에 그리움은 오늘에 머물고/ 사랑이 있기에 그리움은 계속 자라고/ 그대가 있기에 그리움은 형상화됩니다// 그리움이 없다면 내일은 없을 것이고/ 사랑은 메말라버릴 것이며/ 그대는 망각의 세계로 사라질 것입니다// 그리움을 키워야 밝은 미래를 맞이할 수 있고/ 사랑의 불꽃을 피울 수 있으며/ 그대 곁으로 다가갈 수 있습니다// 그리움은 미래에의 관문이고/ 사랑의 열쇠이고/ 그대의 분신입니다// 그리움으로 당신에게 다가가/ 자유함을 누리고/ 구원을 얻고 싶습니다

 

 

922():

 

그리움은 창조의 원동력이 된다.

 

그리움은 상상의 날개를 펴고 떠돌면서 새로운 세계를 그린다. 천경자 화백은 결혼에 여러 번 실패를 했다. 상대방이 있는 남녀간의 사랑에는 실패를 했지만, 사랑의 감성은 무한한 것이기에 사랑이 작품의 주제가 되기도 하고, 평생 작품을 만드는데 힘이 되었다고 한다. 그래도 자기 인생을 이끌어준 것은 , 사랑과 모정이라고 했다. 그의 예술 활동의 원동력은 사랑에 대한 그리움이었다. 예술의 본질은 사랑에 대한 그리움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적절한 표현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린다는 것은 그리워하는 것입니다. 그리움은 그림이 되고, 그림은 그리움을 부르지요.”(바람의 화원) 이처럼 그리움은 그림의 원동력인 동시에 모든 예술의 원동력이기도 하다. 그리움이 사람들을 예술의 세계로 이끌어내고, 예술을 창조하는 과정에서 행복을 선물하고 있다. 그러나 그리움은 예술세계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을 유발하고, 사랑을 유도하며 인생에 꿈을 심어주는 매체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그리움을 느끼지 못하는 인생은 오아시스 없는 사막처럼 얼마나 황막할 것인가? 그러니 행복한 인생을 꿈꾸려면 그리움을 만들고 간직하며 살아야 한다. 우리 모두 그리워하자! 자연을, 사람을, 아니 모든 것을... 그리움이 때로는 정신적 고통일 수 있지만, 또한 창조의 원동력이 될 수 있음을 그의 작품은 보여주고 있다. 그리움을 간직하고 사는 인생은 항상 희망이 있고, 에너지가 넘치며, 지속적인 행복을 누릴 수 있다.

 

이 기사에 대한 독자의견 의견쓰기 전체의견보기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제 목
내 용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TOP 10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