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트워커 '자유’는 인간답게 살기 위한 기본적인 조건이다.

윤명선박사 네트워커 칼럼 제22주(9월 23일-29일)

김현정기자 | 입력 : 2018/09/22 [00:37]

 

▲     © 네트워크신문편집국

 

 

 

22(923-29)

 

자유는 인간답게 살기 위한 기본적인 조건이다.

 

자유는 인간답게 살기 위한 기본적 조건으로 행복의 중요한 요소이다.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지만, 날 때부터 수많은 쇠사슬에 얽매여 살고 있다. 자유란 자연 상태에서 누리는 자연적 자유를 의미하지 않고, 공동체 안에서 법과 질서의 범위에서 누릴 수 있는 합리적 자유를 말한다.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는 스스로 지키려는 자유의식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궁극적으로 자신의 욕망을 내려놓아야 참된 자유를 누릴 수 있다.

 

 

923():

 

자유는 생래적 선물로서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다.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다. 그러나 날 때부터 수많은 쇠사슬에 얽매여 있다.”(루소) 원래 인간의 속성은 자유로운 존재인데, 여러 가지 사회조직 속에서 구속을 받으며 산다는 말이다. 자유는 인간이 공동체 안에서 개체성을 확립함으로써 인간다운 생활을 누릴 수 있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조건이요, 행복으로 가기 위한 필수적 요소이다. 그래서 선택의 가능성을 가지고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일구어가는 자율성이 행복에 큰 심리적 영향을 미친다. 아우렐리스는 이성적 동물인 인간 영혼의 두 가지 공통점으로 남에게 속박을 받지 않는 것과 선으로써 모든 욕망을 억제하는 것을 들고 있다. 인간의 욕망이 행동의 동기가 되므로 자유는 창조의 원천이 되는데, 자유를 통해 인간은 잠재력을 발견하고 그 힘으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다. 그래서 자유는 민주주의의 기초인 동시에 다른 가치 실현의 조건이 된다. 종교가 지배하는 신정정치나 절대군주가 지배하는 전제주의 하에서는 개인의 존재가치는 인정되지 않았다. 근세에 들어오면서 종교개혁과 인본주의에 의해 인간의 가치를 존중하고 개별화를 지향하면서 자유의 쟁취가 역사적인 과제로 등장하게 되었다. 이를 사상적으로 발전시킨 사조가 자유주의였으며, 자연법사상은 자유를 인간의 불가양의 자연권으로 선언하였다. 인류의 역사는, 액튼 경의 표현처럼, 자유를 얻기 위한 투쟁의 역사였다고 할 수 있다. 개인은 자유를 얻게 되었으므로 비로소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설계하면서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것이다.

 

 

924():

 

자유는 절대 권력에 항거하여 얻어낸 시민혁명의 선물이다.

 

자유란 물리적으로든 심리적으로든 외부의 간섭 없이 자기가 하고 싶은 활동을 하는 것을 말한다. 자유는 인간이 인간다운 생활을 누릴 수 있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조건이요, 행복으로 가기 위한 필수적 요소다. 자유는 그 만큼 인간으로서 누려야할 소중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증거이다. 절대 국가에서는 국가목적의 달성을 위해 막강한 권력을 남용 또는 오용함으로써 개인의 자유는 보장될 수 없었다. 그래서 인류는 절대 권력에 항거하면서 피를 흘리며 투쟁을 하였고, 마침내 시민혁명을 통해 자유를 쟁취하게 되었다. 그 역사적 배경에는 인본주의와 자유주의 사상이 있었다. 존 로크는 생명, 자유와 재산을 자연권이라고 선언하고, 이들은 생래적인 권리로서 국가는 침해할 수 없다고 했다. 프랑스 시민혁명 이후 각국의 인권선언은 인간의 해방개인의 자유를 주창하면서 구체제로부터 민주국가로 발전하게 되었다. 시민혁명을 통해 성립된 근대국가에서는 국가의 최고 권력인 주권이 군주로부터 국민에게로 넘어오고, 비로소 헌법 차원에서 개인의 자유가 기본권으로 보장되기에 이르렀다. 시간이 흐르면서 자유권은 확장되어 왔다. 개인에게 인정되는 자유는 외적 요소에 의해 불평등한 결과를 초래하는 형식적 자유가 아니라 누구나 인간이면 누릴 수 있는 평등한 자유이어야 한다. 이들 자유의 바탕에는 인간의 존엄권과 행복추구권이 있으며, 자유를 누리며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인간다운 생활을 누리는 것이다.

 

 

925():

 

자유란 다의적 개념으로 여러 측면에서 살펴보아야 한다.

 

자유는 행복과 함께 인생이 추구하는 두 가지 중요한 가치요, 인간의 존엄성을 실현하기 위한 필수적인 도구이다. 그런데 자유란 개념은 역사적으로 시대와 문화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어 왔고, 학자들마다 달리 정의하는 다의적 개념이다. 법학자 벌린은 자유를 소극적 자유와 적극적 자유로 나누고 있는데, 자유의 개념은 여기서부터 출발하고 있다. ‘소극적 자유라 함은 국가로부터 간섭이나 통제를 받지 않는 소극적 권리를 말하며, 이 권리를 자유권이라고 부르고 국가로부터의 자유의 성격을 가진다. 이에 반해 적극적 자유란 국가가 자유의 실현을 위한 조건을 형성함으로써 스스로 행할 수 있는 실질적 자유를 말하며, 이 권리를 사회적 기본권이라고 부르고 국가에 의한 자유의 성격을 가진다. 인간은 자유롭고 평등하게 태어나 자율적인 삶을 누리는 존재이다. 근대에 들어오면서 자유를 인간의 본성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칸트는 인간이 인과율에 복종하지 않고, 자율성을 가지고 도덕률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진정한 자유라고 했다. 인간은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떻게 살 것인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선택의 자유를 가지고 있으며, 자유인은 자신의 선택에 대하여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런데 선택권이 많으면 어떻게 선택할지 몰라 오히려 행복하지 못하다는 역설이 발생한다. 자유는 궁극적으로 자신의 욕망을 내려놓을 때 느낄 수 있으므로 이러한 심리적 자유가 자유의 최후의 보루이다.

 

 

926():

 

자유는 법과 질서 안에서 행하는 합리적 자유를 의미한다.

 

어느 시인은 일탈한 자 별똥이 자유롭다고 노래하고 있다. 그야말로 시적이고 비유적이며, 그런 표현을 하는 것은 시인의 자유다. 그러나 자유란 이처럼 자연 상태에서 누릴 수 있는 자연적 자유를 의미하지 않는다. 이러한 자유는 로빈슨 크루소가 누린 것처럼 무인도에서나 가능하지, 사회공동체 안에서는 인정될 수 없다. 루소는 사회계약을 통해 시민 사회에 들어옴으로써 인간은 자연적 자유를 포기하고 진정한 자유를 찾게 된다고 했으며, 진정한 자유는 시민적이고 도덕적이며 법의 지배에 복종하는 데 있다고 했다. 개인적 자유는 사회공동체 안에서 황금률인 공생의 원리와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누구나 손을 휘두를 자유가 있다. 그러나 그것은 타인의 코가 시작되는 곳에서 끝나야 한다.” 자유는 방종하기 쉽고 남용되는 것이 용이하다. 개인의 자유는 타인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해서는 안 되며, 사회질서나 공공복리와 합치될 때 보장될 수 있다. 자유의 다른 편에는 의무와 책임이 있으며, 무책임한 자유는 방종이지 자유가 아니다. 이처럼 구성원들 간의 공존과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자유는 법에 의한 제한을 받는 상대적 가치이며, 헌법이 보장하는 자유는 이와 같은 합리적 자유를 의미한다. 이러한 자유의 원리는 사이버공간에서도 그대로 적용되어야 한다. 오늘날에는 시위에서 보는 것처럼 자유의 일탈 또는 과잉이 오히려 문제가 되고 있다. 자유도 지나치면 모자람만 못하다(過猶不及). 이러한 범위 안에서 자유를 누려야 하며, 그 범위를 넘어설 때 국가의 통제를 받게 된다.

 

 

927():

 

자유의 여신상에서 자유의 참뜻을 찾는다.

 

자유의 여신상은 미합중국 독립 100주년 기념으로 프랑스가 우호의 표시로서 기증한 것으로 그 원명은 ‘Liberty Enlightening the World’이다. 이 여신상은 전 세계를 향하여 자유의 중요성을 알리는 상징물이 되었으며, 자유의 여신상이 서 있는 자유의 섬은 세계적인 관광명소가 되었다. 이 여신상은 전 세계를 향하여 자유의 횃불을 들고, 머리에는 월계관을 쓰고 있으며, 왼손에는 법전을 움켜쥐고, 오른손에는 횃불을 높이 쳐들고 있고, 발은 부러진 사슬로 매여 있다. 그녀의 발에 끊어진 사슬을 얹어 놓고 있는 것은 독재의 사슬로부터 해방되었음을 상징하는 것이다. 왼 손에는 법전을 들고 있게 한 것은 자유는 법에 의해 보장되지만, 또한 법의 테두리 안에서만 보호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신상은 승리의 상징으로 월계관을 쓰고 있으며, 횃불을 들고 전 세계를 향하여 자유를 외치고 있다. 자유는 인류가 누려야할 가장 소중한 가치이지만 절대적 권리가 아니며, 법과 질서 안에서 보장되는 상대적 자유라는 것을 전 세계에 알리고 보급하는 것이 이 여인상의 존재이유이다. 미국 의사당 돔 위에 서 있는 자유의 여신상은 투구를 쓰고 허리에 칼을 찬 채 손에는 월계관과 방패를 쥐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는데, 이는 자유란 자유의 적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서는 힘으로 지켜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누구나 자유의 여신상처럼 자유의 본질을 이해하고, 합리적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삶이 행복한 것이다.

 

 

928():

 

국민들의 자유의식이 자유의 보장을 위한 최후의 보루이다.

 

미국의 판사 핸드(Hand)는 시민권을 수여하는 연설에서 자유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다. 자유가 그 속에 죽어있다면 헌법도 법률도 법원도 이를 구조할 수 없다. 자유가 그 속에 살아있는 한 헌법이나 법률이나 법원은 이를 구조할 필요가 없다고 하였다. 국민들의 자유의식 또는 헌법의식이 자유를 누리기 위한 전제조건이 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루소(Rousseau)는 자유를 확장시키고 지속적으로 누리기 위해서는 국가 의사결정에 국민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수적 조건이며, 이는 민주시민의 의무라고 했다. 아무리 헌법에서 상세하게 자유를 보장하고 있더라도 개인들이 자유를 누리고 지키고자 하는 노력이 없는 한 자유를 잘 누릴 수 없게 된다. 예링(Jhering)은 유명한 저서 권리를 위한 투쟁에서 권리 위에서 잠자는 자는 보호할 필요가 없다.”고까지 말했다. 이 명제는 자신의 권리를 누리기 위해서는 부단한 투쟁이 필요함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스티븐스는 자유는 농장과 같다고 말하면서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는 농장을 가꾸듯 노력하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자유는 대가 없이 주어진 선물이 아니라 힘든 투쟁에 의해 쟁취하고 부단한 감시를 통해 보장되는 것이다. “자유는 농장과 같은 것/ 곡식이 저절로 생산되지 않는 것처럼/ 자유도 항상 그대로 머물러 있지 않는 법// 농장에는 잡초와 곤충들이 살고 있듯이/ 자유에도 항상 적들이 도사리고 있으므로/ 부단한 주의와 어려운 투쟁을 요구한다/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는

 

 

929():

 

궁극적인 자유는 욕망을 내려놓을 때 느낄 수 있다.

 

오늘날 우리들은 국가로부터 아무런 간섭이나 강제를 받지 않으니 국가로부터의 자유를 누리고 있다. 우리나라는 개인의 자유가 헌법에서 광범하게 보장되고 있고, 민주화가 상당한 수준에 올라섰다. 종래 국가권력이 권력을 남용하여 인권을 유린하던 관행도 거의 사라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왜 자유롭다고 생각하지 못하는가? 그 이유는 아직도 무엇인가에 대한 집착과 욕망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자유롭게 선택을 하면 어느 정도까지 행복도는 올라가지만, 그 한계점을 넘어서면 선택 만족도는 떨어진다. 어떤 선택도 반복하게 되면 신선도가 떨어지고, 만족감이 줄어드는 것이 인간의 심성이다. 자유에도 쾌락적응현상이 나타난다. 욕망이 클수록 그것에 예속되어 자유를 잃게 된다. 에픽테토스는 자유는 욕망을 채움으로써가 아니라 버림으로써 얻어진다.”고 했다. 욕망만 내려놓으면 마음이 자유롭게 된다. 진정한 자유는 이성의 힘을 통해 스스로 욕망을 통제할 때 얻을 수 있는 마음의 자유를 통해 누릴 수 있다. 루소는 최종적인 자유란 물질적 의존이나 정신적 속박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을 의미하였다. 이러한 자기제어능력이 자유 행사를 위한 필수적 조건이다. 궁극적으로 자신으로부터 해방되어야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자유는 내적 자유를 의미하고, 궁극적으로는 심리적 문제에 속한다. 이러한 간단한 사실, 아니 진리를 깨달아야 진정한 자유인이 될 수 있고, 참된 행복을 누릴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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