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억울하면 출세하라고 했다던가?

함께하는 사회 송 세준 우리 사회의 여명 억울하고 힘들고 안 풀리면 순리적으로 풀어갈 길을 같이

송세준칼럼 | 입력 : 2019/01/25 [21:20]

             

▲     © 네트워크신문편집국


    

예전에는 억울하면 출세하라고 했다던가? 이제는 그런 말이 통하지 않는 사회이다. 억울하고 힘들고 안 풀리면 순리적으로 풀어갈 길을 같이 찾아보자. 무엇을 어찌 도우면 어울릴까? 함께 나누며 어울리며 생각하며 도움을 줄 수 있다

   

우리 민족은 한 맺힐 일이 많은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한은 대부분이 사회구조가 만들어 낸 것들입니다. 유교적인 계층사회가 가족의 기초적인 작은 공동체부터 국가까지 과거를 형성한 충효예의 기본이 계층적인 상하 남존여비의 질서를 기반으로 한 수직사회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의 사회는 수평사회입니다. 질서를 권위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감싸고 권위로 예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인격으로 서로 협조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도 한쪽에서는 가족이며 국가뿐 아니라 남존여비로 부부나 동료들도 서열로 만들다보니 민주적인 질서보다 예를 통한 권위의 질서가 판을 칩니다. 그래서 누가 제왕적이며 갑질이며 웃음거리를 만드는 것입니다.

 

인격은 힘에 의하여 굴복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격으로 어울리며 같이 즐기며 행복해지는 것인데 아직도 옛 질서에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보수라고 부르는 우를 범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경우는 보수가 될 수 없습니다. 과도기적인 현상이라 마땅히 구태를 벗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판이라 예전에 억울린 한과 더불어 한이 또 하나 생길 판입니다. 예전의 권위를 발휘하지 못해서 생기는 한입니다. 주먹으로 힘으로 폭력으로 가르치고 지도하던 이들이 그런 태를 벗지 못해서 생기는 한입니다. 어떤 고집통은 남의 말은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고 논리는커녕 고집으로 논리를 대신하여 또 하나의 한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 결과는 어떤 사회는 한을 무마하기 위하여 부시고 때리고 맞아주는 그런 일이 성황할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한의 질서라고 여기고 살았던 한의 문제들이 학대로 폭력으로 해소해야 할 그런 시대가 올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이는 시급히 사회적인 대책이 필요한 일입니다.

 

지금처럼 이런 문제가 평정되는 시간을 과도기라고 합니다. 아랫사람은 아랫사람으로 윗사람은 사람으로 사회적인 혼란을 야기하는 것은 시대인식을 새롭게 해야겠지만 국가는 어떻게 해야 사회가 안정 될까요? 경제계의 어떤 사람들은 직원위에 군림하다가 영어의 몸이 되기도 하고 정치가들은 치외법권을 이용하여 막말을 늘어놓습니다. 어떤 분은 말마다 새끼니 무엇이니 하는 비하 발언도 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그들은 인격은 없는 사람들입니다.

오늘의 세계는 부모가 자녀에게 교훈한다는 것도 인격적인 질서를 넘으면 학대가 되고 직장에서도 누구위에 군림하면 어떤 이유에서도 앞으로 살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누구도 차별을 하면 안 됩니다. 사회질서가 바뀌고 있는 것입니다. 어디 그렇지 않을 경우가 있을까요?

 

우리 사회는 어디까지가 지켜야 할 질서이고 어디까지가 버려야 할 것인지 판정해야 상하에 쌓인 갈등이 해소될 판입니다. 갈등이 뭉치면 그 또한 한으로 남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한이나 울분을 참지 못하고 대화를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만약 가능하다면 사연을 메모해 보십시오. 그리고 꼭 풀어야 할 문제라면 메일로 주시면 대책을 함께 만들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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