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도건 박사의 경계선 뷰(View)] 기억과 망각의 경계에서

백우기자 | 입력 : 2019/04/15 [22:44]

 

▲  ©네트워크신문편집국

 

인간두뇌는 참 요상하다. 꼭 기억해야 할 내용은 쉽게 잊고, 지우고 싶은 과거는 별도의 노력 없이도 또렷이 기억한다. 대학시절을 돌아보니, 요점정리에 형광펜까지 칠한 내용은 머리를 쥐어뜯어도 생각이 안 나는데, 돈 떼먹고 나를 배신한 ·는 수 십 년 세월이 흘러도 잊지 못한다. 왜 기억과 망각은 반대로 기능하는 걸까? 충격의 강도와 각인효과는 비례하는 모양이다.

 

세월 호 참사 5주기다. 웬만한 기억은 2-3년이면 희미해지는데 워낙 대형 참사였던지라 긴 세월이 지나도 여기저기서 노란(Remember)리본이 보인다. 불편한 진실을 피하려다 피해 본 사람이 많다. 꼭 그 이유만은 아니지만 전직 대통령이 수감되고 관련자 처벌을 시작으로 진상규명위원회까지 출범했건만 망각의 세월에서 진실을 인양하기엔 한참 미흡하다.

 

물리적 상황이 바뀌었다고 상처가 금방 리셋되지 않는다. 사람 마음을 움직이는 건 이론이 아니라 진정한 공감일진대, 때론 그 알량한 이론 때문에 실제적 도움을 주지 못할 때가 있다. 전문가 상담만이 능사가 아닌데 이론만을 앞세운 허세 때문에 중요한 핵심을 놓친다. 만사를 이론 중심으로 접근하면 현장이 주는 진짜 에서 멀어진다. 이때 이론은 (의도와 달리) 심리적 폭력의 도구가 된다. 인간 고유의 개별성에 대한 집중이나 주목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20144월은 매우 어둡고 침울하고 무서웠다. 많은 직·간접 증인들이 권력의 전횡과 가짜뉴스 때문에 침묵했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지만, 빛바랜 세월과 최근의 이슈들로 인해 공감효과가 그리 크지 않은 듯하다.

 

뭔가 알고 있는 자는 침묵하고 있고,

진짜 알고 싶은 자는 요동치는 반면,

소리 없는 아우성만 확산되고 있다.

 

전 법무부 차관의 []의혹 규명을 둘러싼 검·경의 신경전에서 유명 아이돌 가수의 마약사건에 이르기까지, 서민일상과 직접관련이 없다지만 법·정의와 진실을 기대하던 국민정서는 큰 상처를 입었다. 자발적 준법정신을 높이려면, 법 적용의 공정성이 선행돼야 함은 당연지사. 상식에 어긋난 심리(examination)로 진실을 왜곡하는 법리가 이해관계에 얽힌 법조인들의 합법적 전횡도구로 오용되는 것은 아닌지 씁쓸하다. 실리만 따지는 진리는 질린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시민들이 설령 법리의 디테일을 모른다 해도, 상식에 어긋난 판결에는 분노할 수밖에 없다. 국민 대다수가 기대하는 판결이 나와야만 정의는 아니다. 역으로 상식의 기대를 벗어난다고 모두 편파적으로 볼 수도 없다. 다만 우리기대와 다른 판결이어도 최소한 납득은 가야 하는데, 공감하기 어려운 결과가 나오면 어쩔 땐 법치국가가 맞나 하는 생각마저 든다.

 

소홀한 감시를 틈타 입신양명에 눈먼 공무원들이 우리의 지인이란 이유로, 혹은 나 역시 그런 자리에 있으면 어쩔 수 없을 것이라는 암묵적 동의아래 축소·은폐되는 사건들이 너무 많다. 누군가의 사소한 실수가 어떤 이에겐 긴 세월 깊은 상처를 주기도 한다.

 

자의 반 타의 반, 매스컴에 소개된 논평들은 실체적 진실보다 대중의 반향에만 주목한다. 진상규명이라는 본령에서 떠나 조직 내 신분상승을 노리는 세련된 권력숭배가 대부분이다. 저들은 사실에 기초한 진정성보다는 여론몰이에만 신경을 쓴다. 팩트(fact)와 임팩트(impact)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면서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는 두 얼굴의 전문가들. 방향과 동기가 빗나간 충성은 올바른 사랑이 아니다. 부디 타협의 경계에서 양도로 넘어가지 않기를 바란다.

 

탄핵과 세월 호 사건을 계기로 한국사회는 상대적 의인도의적 죄인으로 양분되었다. 물리적-도덕적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누구도 비난할 수 없고 아무도 비난받을 일이 아니라지만 우리 모두 부끄러워해야 할 인재사고이자 직무유기다.

 

M. 루터 킹의 일성으로 결론을 대신한다. “우리사회의 최대 비극은 악한 사람들의 거친 아우성이 아니라 착한 사람들의 소름끼치는 침묵이다.” 소극적 침묵이 적극적 참여로 이어질 때, 비로소 창조적 소수가 아닌 침묵하는 다수(silent majority)가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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