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희 4樂 에세이].36.. 공정사회의 조건은 염치다

CEO 여러분 염치도 있으십니다

벽솔시인 | 입력 : 2018/06/09 [16:48]

▲     © 네트워크신문편집국

 

 

젊은이들이 스스로를 흙수저로 자처한다는

가슴 아픈 얘기의 와중에

몇 개 은행의 은행장과 정부 기관의 책임자들이

저지른 채용비리는,

흙수저를 자처하는 젊은이들의 가슴에 박힌

또 하나의 비수입니다

 

제나라의 환공을 춘추오패(春秋五覇=춘추시대의 5대 강국)의 맹주(孟主) 반열에 올려 놓은 관중(管仲)은 "나라를 세우려면 기강을 세우고, 기강을 바로 잡으려면 예의염치를 확립해야 한다"는 통치철학을 강조했습니다. 

 

관중은 예의가 '나라를 다스리는 기본 틀'이고, 염치가 '청렴과 부끄러움을 아는 품격'이라면서, 예의염치를 '국가라는 그물을 지탱하는 4개의 줄(四維)"로 규정하였습니다. 

 

"4개 중 하나가 끊어지면 나라가 기울고, 둘이 끊어지면 위험에 빠지며, 셋이 끊어지면 근간이 뒤집히고, 모두 끊어지면 멸망한다"고 설파한 바 있습니다. 부도덕한 관리와 제나라 모든 공복(公僕)들에게 국민을 하늘처럼 섬길 것을 촉구하였습니다. 이를 제대로 지키지 못한다면 제 부모조차 섬기지 못할 것이라고 회초리를 들었던 것입니다. 

 

젊은이들이 스스로를 흙수저로 자처한다는 가슴 아픈 얘기의 와중에 몇 개 은행의 은행장과 정부 기관의 책임자들이 저지른 채용비리는, 흙수저를 자처하는 젊은이들의 가슴에 박힌 또 하나의 비수입니다. 

 

선비정신은 고사하고 공복으로써의 몰염치가 매우 불편하여 심사(心思)가 확 뒤틀렸습니다. 공정하지 못한 절차의 정당성과 도덕성보다는, 채용시험에 불법은 없었다는 항변과 염치 없는 해명이, 그러니 이윽고 들어난 확실한 증거와 구속된 채용비리 주범들, 또 구속영장이 청구된 국회의원 등은 우리를 더욱 슬프게 합니다.

  

 때마침 불어 닥친 '우리 사회는 과연 공정한가"에 대한 국민들의 담론들이 한층 뜨거워지고 있습니다. 

 

국어사전에 염치를 "체면을 차릴 줄 알며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람이라면 자신에 대한 체면이 있다는 것으로써 남을 대하기에 떳떳한 도리를 말하는 것이고, 또한 부끄러워하는 느낌이나 마음을 지칭합니다.

 

염치가 있는 사람이란 자신에게만 아니라 남들 앞에서도 부끄럽지 않고 당당한 사람을 말합니다. 이와 반대로 아주 모몰염치(冒沒廉恥)란 말이 있습니다. "염치없는 줄 알면서he 이를 무릅쓰고 일을 헹함"을 이르는 말로서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몰염치, 또는 무염치(無廉恥)를 완곡하게 비틀어 설명한 4자성어입니다. 

 

자신의 딸을 합격시키기 위해 스스로 심사위원석에 가서 앉았다는 고위관리의 행실은 창피한 코미디에 속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녀의 채용 결재 서류에 직접 서명하는 무몰염치의 극치. 우리 선조들은 염치를 인간관계나 사회 또는 국가 유지의 기본적인 덕목으로 여겨 왔습니다. 

 

고결한 선비정신을 목숨처럼 지닌 높은 기개(氣槪)가 있었습니다. 고려시대에는 서로 연관이 있는 관직에 친인척을 같이 임명할 수 없도록 한 상피제(相避制)가 있었고, 조선시대 선비들은 자녀들이 과거시험에 응시하면 출제나 채점에 관련된 관직을 사양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4대강 사업으로 개천이 다 사라지고 있지만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없다면 공정한 사회는 요원합니다.

명예와 부, 권력을 가진 힘 있는 자들의

염치와 각성, 노블레스 오블리주,

사회지도층의 솔선수범이

정한 사회를 견인하는 건전한 문화입니다.

 

높은 관직에 오른만큼 남다른 노력으로 글공부를 많이 하였으리라 짐작되지만 이런 역사적 사실(史實)을 사실(事實)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 많은 글공부는 허구이며 허당입니다. 

인생에 있어 글공부가 부귀영화나 입신양명의 최종목적이 될 수는 없습니다.

 

전문성 확보를 위한 특채제도가 특혜로 변질된 몇 년 전 외교통상부의 사건과, 최근이 은행, 정부기관, 강원랜드 등의 사건은 염치없는 고위공직자의 가벼운 처신으로 커다란 파문파문을 일으키고 '공정한 사회'의 정의에 불을 당겼습니다.

 

4대강 사업으로 개천이 다 사라지고 있지만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없다면 공정한 사회는 요원합니다. 명예와 부, 권력을 가진 힘 있는 자들의 염치와 각성, 노블레스 오블리주, 사회지도층의 솔선수범이 공정한 사회를 견인하는 건전한 문화입니다. 어떤 사회든 '공정한 사회'의 마중물(펌프에 먼저 붓는 한 바가지의 물)은 염치입니다.

 

부정(父情)의 부정(不淨)한 해프닝을 계기로 선조들의 숭고한 선비정신과 숨은 역사공부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타산지석으로 삼아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는 아주 좋은 기회를 얻었습니다.

 

이약실지자선의(以約失之者鮮矣)='자기를 단속하고서도 잘못을 범하는 경우는 매우 적다'는 경계문(警戒文)으로 공자(孔子)는 자기관리의 핵심을 꿰뚫었습니다. 고위 공직자들뿐만 아니라 씨줄과 날줄로 관계를 맺고 있는 우리 모두가 염치없는 마음을 단속해야 할 것입니다. 

 
귓전을 아프게 때리는 말이 있습니다. 

너나 잘해 !! 

좋은 아빠(?)는 딱 한번의 모몰염치로 치욕을 당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혹여, 염치없는 행동으로 다른 사람들을 아프게 하거나 불편하게 하지는 않았는지 자문(自問)해 봅니다. 지금까지 부지불식간)에 저지른 모몰염치를 어떻게 숨겨야할지 실로 암담합니다. 

 

보통사람이지만 평소 자기관리가 너무 부실하였기 때문입니다. 왜 얼굴이 이렇게 화끈거리는지 참으로 염치 없었던 과거의 행동들이 부끄럽습니다. 불을 삼킨 것도 아닌데...... 

 

그리고 <채근담>에 이런 글이 보입니다.

진필즉쇠 능사불의 진필(盡畢則衰, 能事不宜盡畢). "갖고 있는 힘을 다 쓰면 필시 쇠퇴해지므로 그 힘을 다 쓰지 말아야 한다"  

 

염치 없는 사람들의 오장육부를 훤히 꿰뚫어보고 내리는 처방전은 가히 일품입니다. 명문이양(名聞利養:세상의 명성과 이득)을 얻은 것처럼 깨달음의 희열을 느끼게 하는 금언이고 몰무염치의 모든 장애를 뜷는 오묘한 비방입니다. 

 

아직 준비되지 않은 '공정한 사회'의 설익은 정의에 문리(文理)를 트이게 하는 선사(禪師)의 주옥같은 경책(警策)의 말씀은 '공정한 사회'의 보금자리 주택이며 돌무더기가 내려 앉는듯한 철렁함으로 염치 없는 마음에 가라앉는 무거운 비석입니다.  '공정한 사회'의 마중물(펌프에 먼저 붓는 한 바가지의 물)은 예약입니다.

 

빛나는 금과옥조는 어찌 주지스님들에게만 건네는 죽비자(竹篦子)에 불과하겠습니까?

 

염치없는 행동이나 마음이 솟아 날 때마다 스스로 자신을 내려치라는 추상같은 훈도(薰陶)입니다. 어리석은 나는 주옥같은 말씀들을 가슴 깊이 간직하고 드디어는 평생의 훈계로 삼을 것입니다. 

 

염치 뒤에 숨으려 하지 않고 훈도를 꼭꼭 씹어 되새김질하면서 담대한 염치의 싹을 키워 갈 것입니다. 예의와 염치는 삶에서 아주 묘한 긴장감이 흐르는 단어로써 예의가 성공인생의 필요조건이라면 염치는 충분조건입니다. 이 조건을 외면하거나 단속하지 않는다면 결코 훌륭한 지도자나 담대한 리더가 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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