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희 4樂 에세이] 우리는 왜 삼보일배에 매달리는가?

4樂 에세이 35. 삼보일배(三步一拜) 우리는 왜 삼보일배에 매달리는가?

벽솔시인 | 입력 : 2018/06/09 [17:51]

   

▲     © 네트워크신문편집국

 

 

어느 날 석가는 제자들을 영산에 불러 모았다. 그리고 그들 앞에서 손가락으로 연꽃 한 송이를 집어 들고 말없이 약간 비틀어 보였다. 제자들은 석가가 왜 그러는지 그 뜻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가섭(迦葉)만은 그 뜻을 깨닫고 '빙긋이 웃었다' 

가섭만이 '연꽃은 진흙 속에서 살지만 꽃이나 잎에는 진흙이 묻지 않듯이 불자(佛子) 역시 세속의 추함에 물들지 말고 오직 선을 행하라'는 뜻을 알아 들었던 것이다.

 

며칠 전 부처님 오신 날..삶에 지친 중생은 봉축하며 오래된 불자(佛子)처럼 성불(成佛)의 의미를 되새긴다. 그런 뜻이라면 삼보일배(三步一拜)는 시의적절한 화두(話頭)다. 삼보일배는 2003년 새만금 간척사업 반대 시위에 등장하여, FTA반대 홍콩, 워싱턴 등 원정시위를 통해 글로벌 화된 반대 의사표시의 상징이 되었다. 사실은 삶의 지혜가 담긴 삼보일배의 심오한 뜻이 왜곡된 것이다. 

  

삼보일배는 걸음을 세 발자국 걷고 난 후에 손과 손을 잡고 바닥에 댄 다음 목을 손 가까이 내리는 절을 일컫는다. 세 번의 걸음걸이는 탐(貪), 진(瞋), 치(痴)의 삼독(三毒)을 의미하며 

사람들은 누구나 탐하고, 성내고, 어리석다는 '탐진치'의 삼독을 가지고 있다. 개인이나 사회적 모든 갈등의 원인은 삼독 때문이다. 

 

여러 가지 욕심이 중생의 습기(習氣 . 나쁜 습관)이므로 불만과 어리석은 갈등에 시달리는 것이다. 한 번의 절을 통하여 한 가지의 독을 없앤다는 주술적(呪術的)인 행위가 삼보 후에 일배다. 결국 '참나'를 바로 보는 의식이다.

 

계(戒), 정(定), 혜(慧)의 삼학(三學)은 삼독심(三毒心)을 다스리는 약(藥)이다. 삼학(三學)은 서로 다른 별개의 것이 아니라 계(戒)는 탐(貪)과, 정(定)은 진(瞋)과 혜(慧)는 치(痴)와 연결되어 수신(修身)의 거울이 된다.

 

삼학은 팔만대장경에 담겨 있는 수많은 가르침을 계, 정, 혜의 세 가지로 분류해서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깨달음에 이르게 하는 훈도(訓道)이다. 계를 닦음으로 정이 생기고, 정을 닦음으로 혜에 이르고 깨달음에 닿는다. 

 

戒는 '조심하고 주의하다'는 뜻으로 자발적 결의, 자기 자신을 통제하는 것으로 양손에 창을 들고 자신을 지키는 모습이다. 한빙계(寒氷戒), 즉 자신을 지키는 일은 얉은 얼음을 밟듯이 신중하게 하라는 말이다. 

 

승인자유력(勝人者有力), 자승자강(自勝者强)..남을 이기는 것은 힘이 있다는 것에 불과하지만 자신을 이기는 사람을 진정으로 강한 사람이다. 힘 있음은 지(知)요. 강한 갓은 명(明)이다. 마음공부와 학이락(學而樂)의 사다리는 명(明)이다.

 

定은 '정할 정'으로 머무르다, 준비하다, 다스려지다는 뜻으로 집안의 편안한 상태다. 흔들리지 않는 중용(中庸)으로 불교 수행, 즉 '마음공부'를 의미하며 마음이 한 곳에 집중하여 전혀 동요함이 없는 안정하여 머물러 있는 선정(禪定)의 상태를 뜻한다.

 

定의 상태는 생득선정(生得禪定)과 수득선정(修得禪定)의 두가지 종류가 있다. 

전심치지 일심청정만사안(專心致志 一心淸淨萬事安)..마음을 온통 한 곳에 모아 집중하면 

어떠한 일에도 마음을 빼앗기지 않기 때문에 마음이 청정하고 만사가 편안하다는 뜻이다. 

慧는 '슬기로울 혜'로써 '사리에 밝다'는 뜻으로 '깨닫다' '상쾌하다'를 함유(含有)하고 있다.

 

사리를 분별하여 의심을 끊는 총명함으로써 깨닫는다는 의미다. 여기서 깨달음이란 철이 든다는 다른 표현이다. 수행의 목적은 혹불석야(惑不釋也 .깨닫다), 그 깨달음의 경지에 도달함에 있다. 

 

  "Art is long and Life is short.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는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이 말은 원래 "기술(배우고 익히는 시간)은 길고 인생은 짧다"는 의미이다. 

생사사대 무상쾌속(生死事大 無常快速)의 화살같이 빠른 인생이었다. 

 

하지만 세상은 참 많이 달라졌다. '인생은 길고 예술은 더욱 무한하다'는 말로 바꿔야 하는 장수(長壽)가 대세(大勢)다. 우리가 살아가야 할 시간이 과거보다 훨씬 더 길어 진 것이다. 

 

지금까지는 율(律)의 시대였다면 흔히 세상에 없던 100세 장수의 시대는 계(戒)의 시대라고도 한다. 쓰나미 처럼 밀려오는 장수의 시대는 누구에게는 축복이며 또 누구에게는 저주일 것이다. 자기절제(Self control)를 통한 100세 인생의 행복 찾기는 오로지 삼학(三學)으로부터 시작된다. 

 

불교계 뿐 만아니라 사회전체의 존경을 받았던 '성철'스님의 유지를 잇는 '백련불교문화재단'의 이사장 '원택스님'은 "길이 보이지 않는다면, 부처님의 정법(正法)을 바르게 공부하는 것이 길을 열어 가려는 불자의 올바른 자세"라 했다.

 

통도사 승려 교육의 근본으로 삼았던 삼보일배의 가르침은 오늘따라 천금만근의 무게를 느낀다.  준비 없는 내 인생의 오후는 삼보일배의 삼독(三毒)을 다스리는 삼학이 답이다.

 

"부처의 눈에는 모든 것이 부처로 보인다"는 말이 있다. 부처는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보는 '마음의 눈'을 말하는 것이리라. 축복과 저주의 양면성을 지닌 장수 시대를 맞이하는 내 눈은 무슨 눈일까? 불자(佛子)는 아니지만 부처님의 손에 든 연꽃을 바라보는 가섭의 미소가 사무치게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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