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후 소일거리가 없어 ‘심심’함을 토로하는 사람들이 많다. 심심할 땐 소금을 치라 했더니 확 짜증을 낸다. 아직 짜증낼 혈기가 있다면 그래도 청춘이라 했더니 조금은 인정하는 눈치다. 무기력증에 빠지면 짜증낼 여력조차 없기 때문이다.
흔한 오해 중 하나. 우린 심심하다고 쓰고 외로움이라 읽는다. 심심할 때 기발한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던가! T. 에디슨의 발명이 그랬고, S. 잡스의 혁신 기술이 모두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서였다. 한가할 때 자유로운 상상이 가능하고, 그때 또 다른 세상을 탐험한다. 일거리가 없어 심심하다고 말하기보다 익숙하지 않은 세상을 탐험해 보는 건 어떨까?
우리는 직업을 특정 지위와 직책에만 국한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 점에서 은퇴하면, 쓸모없는 퇴물이라는 무기력에 빠진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곧 내 ‘자신’은 아니다.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일에 미치는 사람은 대부분, 내면의 빈곤한 자존감을 외부의 화려한 직책으로 포장하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어 감투를 좋아하는 같은 맥락이다. 별 영양가도 없는 직책인데 온갖 ‘타이틀’을 다 붙여 여전히 현역임을 스스로 세뇌하는 것이다.
과거 ‘직업’職業은 (일시적) ‘지위’와 (전문분야의) ‘업’을 합친 말이었지만 요즘은 다르다. 영구 보장된 직장은 없어도 평생의 업 하나는 가져야 [100세 시대]를 버틴다. 75세의 바리스타와 소믈리에(Sommelier)가 있는가 하면 80세 할머니가 프랜차이즈 레스토랑에서 홀 서빙을 한다. 백수도 과로사(?)하는 게 결코 과장이 아니다. 주말엔 콜라텍에서 만남을 즐기고 평일에는 천안, 아산을 시작으로 청평에 춘천까지 무위도식 여행을 즐긴다. 붐비는 출퇴근 시간, 65세 이상 노인들의 지하철 무임승차에 대해 찬반논쟁이 벌어질 정도다.
주5일제인데 과거 대비 주말이 더 피곤하다. 처리해야 일과 정보의 양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도시현대인의 삶이 다 그렇다. 실시간 쏟아지는 뉴스와 정보에 일일이 반응하다보면 조용한 공간에서 독서하고 사색할 시간이 없다.
사색을 검색으로 대체하다보니 점차 가난하고 건조한 영혼이 되어간다. 즉각적이고 동물적인 감각에만 굶주릴 뿐 깊은 깨달음과 각성이 없다. 생각을 주관하는 ‘전두엽’과 시·지각을 처리하는 ‘후두엽’은 진화했지만, 감각과 정서를 담당하는 ‘두정엽’과 ‘측두엽’은 상대적으로 둔화된 탓이다. 미성숙이 아니라 편성숙의 결과다. 이제야 말로 문화생활을 통한 기능 별 균형이 필요하다.
지난 주말 지인의 초대로 뮤지컬 [씨블링스]를 보았다. 천방지축 삼남매의 욜로 라이프, 힘겨운 청춘들의 생존 필살기와 좌충우돌 갈등 속에 돌아가신 엄마를 그리워하는 가족애를 그렸다. 탄탄한 대사에 완성도 높은 음악, 현실감 넘치는 연기의 삼위일체가 1시간20분 동안 숨죽이며 몰입하게 했다.
작품을 무대에 올리기까지 몇 달을 고생한 스텝들도 그렇지만 음악감독 [한정림] 과 연출자 [안젤라 권]의 역량이 단연 돋보인다. 대형 작품과 달리 중소형 규모의 살롱 뮤지컬은 가벼운 주제의 코믹한 연출을 통해 깊은 감동을 끌어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반응은 의외였다. 가벼운 식사에 와인까지 곁들인 배우들이 꽉 찬 관객을 마주하니 케미(화학적 반응)가 절정에 달한다. 지난한 노력에 비해 열악한 개런티에도 불구하고 저들이 열연하는 이유는, 그 두 시간 동안 누리는 짜릿한 희열과 카타르시스 때문이다. 정지된 스크린의 영화보다 숨소리까지 접수하는 일회적 예술이야말로 연극과 뮤지컬이 주는 독특한 묘미다.
한 편의 뮤지컬은 멋진 뒤풀이로 이어졌다. 괜찮은 식사에 벨기에 명품 <Leffe>까지 곁들이니 무릉도원이 따로 없다. 세익스피어와 비틀즈의 나라, 영국이 장기침체를 벗어난 계기는 2007년의 [Creative Britain]이었다. 국민소득 20000$이던 당시 영국은 해리포터의 등장으로 문화산업 재기에 성공했다. 정확히 5년 후 우리나라도 한류열풍을 국가의 신-성장 동력으로 삼기 시작했다.
K-Pop, K-Drama, K-Food에 이어 K-Beauty산업에 이르기까지 OSMU(one- source-multi-use) 문화상품이 즐비하다.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이다. 무망감에 젖은 중년이여, 제2외국어 하나 배우시라. 삶의 목표가 생기면 하늘이 더 푸르게 보인다. 활짝 핀 꽃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역경을 이겨낸 인내요, 실패를 값지게 한 도전이며, 내일(tomorrow)의 내 일(my job)을 기다리는 희망이다. 어두움은 빛으로, 무망감은 살아있는 희망으로만 극복된다.